강준만과 그들의 1인혁명, Korean New Left로 진화하라!

강준만은 2020년 4월 7일 출간한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라는 책에서 언론 시장에서 끊임없이 갑질을 하며 돌아다니는 문빠에 대해 실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그리고 민주화 이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세상을 선과 악의 대결장으로 인식하며 기꺼이 진보 정권의 “어용 지식인”이 되겠다는 유시민을 80년대에 갇혀 있는 인물로 규정하였다.
강준만 교수의 신간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

필자는 꽤 오래 전부터 유시민 뿐 아니라 진중권 – 다행히 최근에 그는 문재인과 그 추종자들의 기행 덕에 80년대의 감옥에서 거의 탈출한 듯하다 – 을 비롯한 대표적인 좌파 논객들이 지나치게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쉽게 말해, 80년대식 사고에서 성장을 멈추었다고 본 것이다. 이것은 계급의식이나 민족의식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도 있지만, 조금 쉽게 풀어서 말한다면 “지나친 선민의식과 상대에 대한 지나친 악마화”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그는 얼마 전 “권력은 사람의 뇌를 바꾼다”라는 책을 시장에 내놓았다. 그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 역시 앞에서 소개한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라는 책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과 유사하다.

권력은 사람의 뇌를 바꾼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이번에는 “좌표 찍고, 벌떼 공격”을 일삼는 문빠 집단의 파괴적인 행태의 전제 조건으로 권력을 상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그는 그들이 권력을 가졌기에 실제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결론으로 나아간다.

나 같은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강준만 교수는 매우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반론이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 좌파 진영에 속했다고 평가해야 할 그와 우파 진영에 속해 있다고 봐야 할 필자 사이에는 어쩔 수 없는 톤(tone)의 차이가 존재한다:

 

  • 세상을 선과 악으로 구분하며 끊임없이 상대를 악마화하는 80년대식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의 비율에 대한 인식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는 문빠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그 비정상적 좌파 집단을 축소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 그의 속마음이야 어떻게 알겠는가. 그러나 나는 그 비정상적인 집단이 좌파 집단 전체의 최소한 과반수 또는 2/3 이상이라고 본다.
  • “좌표 찍고, 벌떼 공격”하는 그들의 행태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상처내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의 일이다. 그리고 그것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난 사건이 바로 드루킹 사건이다. 이러한 행태가 드루킹 사건보다 훨씬 더 앞서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일종의 상식이다. 우리는 그것보다 훨씬 전부터 – 이명박 때부터라고 봐야 할 것이다 – 네이버 댓글이 어떤 좌파 집단에 의해 심하게 왜곡되고 있는 현장을 수없이 목격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쩌면 지금 서 있는 위치의 차이에 근거한 어쩔 수 없는 간격일 수 있다. 강준만이라는 사람은 그 진영 안에서 자기 편에 속한 사람들을 어떻게 해서라도 얼래고 달래야 할 입장에 있는 사람이고, 나는 그 진영의 밖에서 그들을 가차없이 비판하려고 마음먹고 달려드는 사람이다.

유재일, 진중권, 서민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들 역시 여전히 자기 자신이 진보 진영에 속한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들의 좌파 비판은 우파의 좌파 비판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들은 여전히 좌파 집단에 대해 커다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그들 역시 좌파로서 좌파 집단을 비판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굳이 586 전향자들의 이름을 열거하지 않더라도, 그들 역시 김지하, 이영훈, 김문수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들은 어떻게 보면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걸고 양심과 정의감에 이끌려 이 미친짓(?)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그들의 미친짓의 성공 여부에 좌파 진영은 물론 대한민국의 운명이 달려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겨우 한 걸음을 내딛었을 뿐이다. 어쩌면 그들도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그 안에서의 고립과 손가락질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그 진영 밖으려 뛰쳐나오게 될 수도 있다. 부디 그들만은 그렇게 되지 않기를 간절해 바래본다. 만약 그 안에서 그들과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집단을 어느 정도라도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이것은 민주화 이후 한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말 그대로 “새로운 좌파(Korean New Left) 또는 제3의 길(Korean Third Way)”의 출발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내부의 힘과 외부의 힘이 합쳐져서 좌파 집단이 극적인 자기 혁신의 길로 들어서고, 이에 경쟁하듯 우파 집단 역시 극도의 기회주의로부터 탈출할 수 있다면, 그리고 좌우가 서로를 악마로 인식하지 않고 조금 더 확실한 진실의 눈을 가지고 절제 속에서 치열한 경쟁을 이어갈 수 있다면, 이 나라의 미래에 대해 걱정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오늘도 새로운 꿈을 한번 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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